한방의 경쟁력 - 한의학의 임상적 우수성과 나아가야 할 방향
이 글의 요약
서양의학과 한의학이 서로의 장단점을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원장의 생각을 담은 글입니다. 한의학의 임상적 강점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리했습니다.
서양의학이 현대 의료의 주된 패러다임이 된 이후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서양의학과 한의학이 공존하며 국민들의 치료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질병을 고치고 건강을 증진시키는 학문적 도구로서 무기는 많을수록 좋은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각각 학문의 장점을 발휘하지 못한 채, 대립하고 경쟁하며 서로를 깎아내리기에 급급한 면이 적지 않습니다. 이는 단순히 학문적 가치와 임상 효과의 우열로 인한 것만이 아니라 경제적 이익과 사회·정치적 이권 등의 의료 외적인 면이 반영된 가운데 생긴 결과라는 점이 의료계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급성 세균성 질환을 대처하는 항생제나 외과적 수술의 강력함, 과학기술에 기초한 진단 및 치료기기의 사용 등 서양의학의 강점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서양의학은 정밀하고 미세한 분야에서 강점을 드러내며, 상대적으로 개인차와 건강 상태를 고려한 맞춤치료, 병 이전 단계에서 면역력 및 체력의 증진, 노화나 만성질환에 대한 임상적 효과는 한의학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서로의 장단점을 상호보완 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국민 건강 증진을 이룰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오히려 현대과학의 잣대로 한의학을 마치 비과학적이고 정체불명의 술기로만 판단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다른 것과 틀린 것을 알지 못하며 이익에 따라 논리를 끌어쓰려는 몰지각한 일부 때문에 한의학의 가치가 퇴색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서양의학적으로 한의학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의외로 이러한 경향이 우리나라나 중국, 일본 같은 동아시아 국가뿐 아니라 유럽이나 미국 등 범세계적 관심 주제라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실제로 침이나 한약 같은 주제에 관한 논문은 우리나라 못지 않게 서유럽이나 미국에서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데도 한의학을 겉으로는 동양철학에서 비롯된 술기로 치부하면서도 뒤로는 어떻게든 한방치료의 혜택을 이용하려는 노력을 하는 모습을 보면 쓴웃음이 지어집니다.
저는 내 것과 남의 것을 모두 알아야 필요에 맞게 취사선택을 하고 비판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한의학뿐만 아니라 의사들의 시각에서 스스로의 학문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낸 서적이나 한의학(어휘는 보안대체의학이나 자연의학이라고 돌려말하고 있지만)에 대한 관심을 언급한 논문들을 살피려 노력하면서 스스로 느낀 점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서양의학은 원인과 치료를 1:1로 대응시키고자 하는 과정 가운데 의학을 발달시켜 왔습니다. 따라서 인체의 반응보다는 병의 원인(病因)에 집중을 하여 무엇 때문에 병이 생겼는지를 밝혀내기 위해 과학과 기초의학의 힘을 쏟았습니다. 세균때문에 병의 발생하는 것을 밝혀 항생제를 개발하여 많은 목숨을 살렸으며 백신을 개발하여 파상풍이나 홍역, 천연두 등 이전에는 원인도 모르면서 죽어갔던 질병들로부터 인류를 구한 것, 혈액을 대체할 수액을 사용한 것이나 외과 수술의 발전시켜 전에는 못고치던 여러 질환 치료에 신기원을 연 것 등 서양의학이 지금까지 이룬 업적은 분명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원인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질병을 만나면 서양의학은 약점을 드러내고 맙니다. 어렸을 때 저는 모든 병에는 원인이 있으며 그 원인만 치료하면 병은 말끔히 낫는 줄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의학을 배우고 인체의 생리, 병리를 배워오면서 생각보다 너무도 많은 병들이 ‘원인 불명’이라는 것이 안타깝고도 놀라웠습니다. 실제로 내과학의 바이블이라고 하는 Harrison 내과학이나 정형외과학 같은 종합 의서에서 너무나 많은 병들이 ‘자가면역질환’이라는 원인으로 무지를 포장하고 있습니다. 원인이라도 안다면 병을 고칠 노력이라도 해볼텐데 환자들은 어디를 가더라도 속 시원하게 병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곳은 없고 평생 약물로 조절하면서 관리 해야한다는 말을 들으니 그들의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한의학은 對證醫學입니다. 이 말은 치료에 있어 병의 원인에만 치우치지 않고 병에 인체가 대응하는 변화 유형(證)에 중점을 두며 치료를 할수 있다는 말입니다. 서양의학에서는 원인을 모르는 질환이 나오면 이전 약이나 치료법은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가면역질환 등 원인을 규명하지 못한 질병은 소염진통제나 면역억제제를 줘서 통증이나 (고통을 수반한) 증상만을 없애려고 하지만 인체를 중시하는 한의사들은 몸 전체의 기운의 부족이나 혈액순환의 개선, 체액의 편중을 침뜸이나 한약으로 조절하여 몸 상태를 증진시키고자 합니다. (傷寒論이나 金匱要略, 그리고 일본한의학에서는 이를 近因 [ 氣 血 水]의 變調 때문에 몸에 증상이 나타난다고 하였으며 실제로 치료 대상은 遠因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내인, 외인, 불내외인]이 아니라 몸의 대처 반응인 '近因'이라 하였는데 타당한 주장이라 생각합니다.)
만약 병을 일으키는 세균이나 영양상태, 환경의 변화 등 서양의학적으로 본 병의 원인을 遠因이라 하고 (이에 반응하는) 몸의 (병리적인) 대응 변화를 近因이라 할 경우, 近因을 치료할 수 있는 한의학은 임상적으로 우수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냉정하게 말해 과학이나 의학이 발달한다 하더라도 모든 병의 원인을 다 규명하고 그에 따른 치료법을 각각 개발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한 병도 스스로 살기위해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효과가 있었던 약이 지금 비슷한 병에는 효과가 없어지는 내성때문에 항생제도 1세대, 2세대, 3세대 처럼 항생제도 점차 강력하게 변형시켜 사용할 수 밖에 없는 것처럼 병의 원인을 정복하기 위한 치료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질환이 늘어날 수록 한의학의 강점은 빛날 수 있습니다. 또한 병의 원인이 하나가 아닌 복합적인 요인이 서로 엃히고 섫혀 질환이 발병할 경우에 원인 제거를 위주로 하는 치료법은 효과를 100% 내기 어렵습니다. 여러 증상에 대한 약을 모두 처방할 수는 없는데다가 각기 치료가 서로 상쇄작용이 있을 수도 있고, (순작용이든 부작용이든) 예상 못한 제3의 효과를 미리 다 고려하여 치료하기란 말로도 너무나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병의 원인이 복잡할지라도 치료는 최대한 심플하게 해야 원래 목표하던 치료를 할 수 있습니다.
'무슨 질병에 OO탕', '어디 통증에 OO침'처럼 두 학문의 원리와 차이를 제대로 알지못한채 양방적으로 원인을 진단하고 치료만 한방으로 하는 '양진한치'는 이도저도 못한 미봉책에 불과 합니다. 한의학이 인체의 상태를 개선시키는데 강점이 있는 만큼 인체가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치유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흔히 한의사가 질병과 상관이 적어보이는 환자의 건강상태나 생활습관, 음식물, 심리상태 대해 관심을 두는 것이 질병을 고치는 데 무슨 도움이 되냐고 물어보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보를 소중이 할 줄 알아야 환자가 병에 대처하는 상태(능력)를 파악할 수 있고 病證을 치료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의학은 서양의학과 다른 방향으로 임상적인 가치를 높여야 합니다.
한의학만이 우수하고 한의학만이 대안이라고 생각하자는 것이 아니라, 서양의학의 장점과 혜택은 충분히 취하되 그들과는 다른 우리만의 장점을 높이기 위해 바르게 노력할 때 한의학의 임상적 우수성은 발휘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