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과 한약의 가치에 대한 재평가 필요성
이 글의 요약
2011년 Nature지 한의학 특집 기사를 바탕으로 한의학과 한약의 가치를 새로운 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글입니다. 증(證)에 기반한 맞춤 진단, 여러 약재를 함께 쓰는 복방의 특징과 임상 연구의 어려움을 정리했습니다.
한의학과 한약의 가치에 대한 재평가 필요성
한의학의 세계화와 ‘새로운 관점에서의 한방의 경쟁력’에 대해서 부족하나마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혼자만의 논리로 한의학을 해석하고 자가당착하는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신력 있고 권위 있는 유명 저널인 「Nature」誌에서 한의학’에 대해 소개, 설명했던 기사를 참조하여 제 생각과 함께 말씀드리려 합니다.
2011년 12월 「Nature」誌에서는 한의학 관련 특집 기사 13편을 실었습니다. 이들 기사는 단순히 한의학의 기존 과학적 연구 성과를 평가하거나 소개하는 내용이 아니고 동서양 의학의 융합에 관한 주제부터 한약을 이용한 신약개발의 현황과 제도적 문제, 특허권, 임상시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는 내용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기사들은“한의학을 비롯한 동양의학은 그들의 특징과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연구되어야 하며, 한의학에 적합한 방식으로 평가 받아야 한다”논조를 보였으며 그동안한의학을 서양의학의 기준에서 평가, 판단하여 ‘한의학은 경험에만 근거하며 비과학적이다’라는 근거 없는 오해를 불식시키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기사에서 보는 동양의학은 TCM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단어 그대로는 전통중의학을 지칭하나 우리나라는 ‘한의학’으로 해당됩니다.)의 여러 측면을 검토하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한의학을 비롯한 동양의학에 대한 관심이나 치료는 한국, 중국, 일본 같은 동아시아에 국한 된 것이 아닙니다. 동양의학에 대한 서양의학의 관심은 차이를 알고 궁금해 하는데 그치지 않고 부족한 점들을 보완하고 대체하기 위해 실제로 의료의 한 방면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재도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Acupuncture이나 Herb로 환자를 치료하는 Case가 많으며 임상에서 뿐만 아니라 Journal과 Reserch도 활발히 이루어져 오히려 원조격(?)인 우리들을 놀라게 하기도 합니다.
미국에서도 Acupuncture나 Chiropractic, Homeotherapy 등이 주마다 의료의 한 방면으로 채택되고 있으며 특히 Acupuncture 같은 경우는 주에 따라 국가에서 공인한 시험에 합격한 자를 대상으로 시술을 할 수 있도록 공인 자격이나 대학교의 과목으로 채택한 경우도 많습니다.
의학의 질적 양적인 효과를 평가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으나 현재까지는 RCT (Randomized controlled trial ; 무작위 대조군 연구)가 가장 정확하고 신뢰성 있는 것으로 인지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에는 한의학연구원이나 한방병원 & 학교에서 한방 치료의 효과를 평가하고 증명하기 위해 잘 설계한 임상 연구 모델을 바탕으로 대규모의 RCT(무작위 대조군 연구)나 PCT(실용적 임상 연구)를 실시하여 침이나 한약, 여러 한방 치료의 결과를 논문에 투고하고 있으며 그동안 서양의학이 중심이던 저널들에 개재되는 등 한의학의 효과를 객관화하여 검증받기 위한 노력이 점차 인정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한의학을 비롯한 전통의학의 맞춤의학적 특성은 무작위대조군 연구(Randomized controlled trial)를 그대로 적용시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환자의 호소나 증상 경감은 주관적인 관계로 결과를 수치화하기가 어렵고 또한 환자의 증세에 따라 치료법이 다른 맞춤의학적 특성 때문에 대규모의 임상 대상에게 동일한 protocol을 적용시키는 임상연구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 때문에 ‘한의학은 객관성이 떨어지고 임상의학으로서 근거가 미약하다.’라는 것이 외부에서 한의학을 비판하는 주 논지였는데 이번 「Nature」誌의 기사들은 “동양의학에 서양의학적 잣대를 들이대서 평가하는 것이 과연 가장 옳은 방법인가?” 라는 원론적인 질문과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기사 본문 중 “한의학은, 한의학의 특징과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연구되어야 하며, 한의학에 적합한 방식으로 평가 받아야 한다”는 논조는 한의학을 기존의 환원과학적 패러다임으로만 재단하려고 하지 말고, 맞춤 의학적이고 전일적인 특·장점을 살려 연구할 때 그 진정한 가치를 밝힐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동양의학에서 환자는 질병 자체로 진단하고 치료 계획을 설정하는 것 대신에 증(證)에 기반한 맞춤형 진단을 받습니다. 證이란 환자 개개인에 대한 특징적인 건강상태 표현형(characteristic phenotype)으로서, 현대의학에서는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 많은 증상들 이를테면 갈증, 혀의 상태, 사지의 한열감, 정서 상태 등도 증의 결정요소에 포함됩니다.
인체가 질병에 걸렸을 때 나타나는 증상들은 다양합니다. 예를 들면 감기에 걸렸을 때에도 체온이 올라가고 땀이 나며, 몸을 벌벌 떨게 되고 식욕이나 소화능력이 감소됩니다. 또한 기침이나 두통이 생기거나 가래가 진해질 수도 있으며 심장박동이 빨라지거나 대소변에도 변화가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의학은 환자의 호소 증상보다는 혈액 속 염증 수치나 백혈구 수치 등의 객관적 지표를 더 중시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병이란 상태가 어느 단위 이상의 수치가 넘었을 때를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러한 경향으로 (균형이 잡힌 상태에서) 치우쳐 발생하는 증상들을 병이라 보느냐?” 라는 관점의 차이에 따라 證을 중시하는 한의학의 강점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염증수치나 백혈구 수치 등의 객관절인 수치지표들이 덜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예를 든 것이 아닙니다. 각 의학이 중시하는 측면이 달리 있으며 모두 가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환자의 호소 증상은 객관적인 다소를 나타낼 수 없기 때문에 질이 낮은 정보이다.’ 라고 말한다면 의학이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지 본래의 목표를 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대의학은 한의학이 객관적으로 효과를 나타낼 수 없고 치료에도 통일된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의료로서의 가치가 적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본디 병이 걸렸을 때 (치료를 통해) 교정하고자 하는 것은 객관화된 수치일지 아니면 환자의 불편한 증상일지를 생각해보면 결론은 의외로 쉽게 내릴 수 있습니다.
한약의 약물구성 또한 현대의학의 약과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한의학을 비롯한 동양의학에서는 환자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협력하여 작용한다고 생각되는 몇몇 약물들의 조합-복방(複方)을 대부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약물들이 생체 내 상호작용(drug-drug interaction)을 통해 치료효과는 강화하고 독성은 줄일 수 있다는 것이 한약의 핵심입니다.
하지만 현대의학에서는 한약은 치료약물로서 그동안 연구의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른 바 단일 성분이 아닌 복합성분으로는 어느 성분이 어떤 효과를 내는지 규명하는데 한계가 있으며 부작용이나 상호작용을 알기 어려워 학문적인 가치가 낮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유럽과 미국의 규제기관들은 약물은 반드시 고도로 정제되거나 또는 합성된 것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수십 년 동안 견지해 왔습니다. 한의학 제제는 대개 혼합물이고 유효성분의 화학구조가 확실하지 않으므로 기준에 부합하지 못해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때문에 복합성분인 한약의 가치는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조차 잃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최근 실험실에서 단일성분으로 고도의 선택성(high selectivity)을 보인 약물보다 여러 표적(multiple target)을 건드리는 난잡한 약물들(dirty drug)이 실제 동물실험, 환자대상의 임상시험에서 더 좋은 효과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과 병은 한가지 원인때문이 아니라 다양한 요인이 결합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여러 성분이 혼합되어 다양한 경로를 건드리는 다중표적 약물(multi-target drug)이 더 우수한 임상적 효과를 가진다는 연구결과는 한약의 임상에서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됩니다.
또한 단일 성분을 지속적으로 사용할 경우 몸의 생리상 내성이 생겨 약의 효과가 경감된다는 점과 약물의 생체 내 상호작용(drug-drug interaction)을 통해 각 성분의 효과가 다소 줄어드는 대신 단일 성분이 가지고 있는 독성이 희석된다는 점도 복방의 장점으로 들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약의 상호작용으로 제3의 부작용이나 독성이 발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수천년 역사동안 임상에 사용된 한약의 역사로 미루어 볼 때, 복방의 부작용은 단일성분보다 결코 높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임상적으로 효과를 평가하기가 어려움이 그 의학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태도는 지양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일률적인 지표로서 의학의 우수성을 평가하는 것은 많은 것을 간과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한의학과 한약의 가치를 재평가하기 위해서 기존의 방법론과 함께 실제 임상에서의 효과를 알아볼 수 있는 임상연구와 가치평가가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어려운 주제라서 제가 쓰고도 정리가 다 안되는 점이 있는 것 같은데 양해부탁드리며, ‘다름’과 ‘틀림’을 잘못 혼동하여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로 하여금 열린 마음으로 ‘Difference’를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Reference *
민족의학신문 특집 -「Nature」誌에 소개된 아시아 전통의학 / 김창업. 서울대 의대 생리학교실 박사과정. 한의사.님의 글을 참조하였습니다. 좋은 고견에 감사드립니다.**